"여보 쌀이 없어" 생활고 시달려도 끝까지 남편을 믿었던 '봉준호 아내' 정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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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4개 부문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 높였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게 고독하고 외로운데 언제나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다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봉준호 아내는 정선영 씨는 시나리오 작가로 1995년 봉준호 감독과 결혼했다. 1992년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만났으며, 언제나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독자였다. 두 사람은 95년 결혼 후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오히려 생활고에 시달렸다.​


영화 조감독으로 2년 가까이 일하며 번 돈은 고작 450만 원이었고 2003년 살인의 추억 개봉 당시까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먹을 게 없어 대학 동기가 쌀을 갖다 주었을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이때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에 열중할 수 있었던 건 아내 정선영 씨 덕분이었다. 1998년 봉준호 감독은 아내에게 1년만 시간을 달라고 전했다. 생활비를 버는 대신 시나리오에 열중하겠다는 의지였다. 이때 아내는 흔쾌히 "좋다! 못 먹어도 고!"라며 봉준호 감독을 끝까지 믿어주었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바로 한국 역사상 최고의 영화로 불리는 '살인의 추억'이었다. 살인의 추억 관객 수는 525만 명으로 당시 온갖 상을 모두 휩쓸었다. 만약 봉준호 아내의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은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믿었고 결국 아카데미 최다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봉준호 감독의 열정은 아들 봉효민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봉준호 아들 봉효민은 YG 케이플러스 웹 무비 프로젝트를 맡에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한편 봉준호 집안은 로열패밀리로 알려져 있으며, 봉준호 아버지는 그래픽디자이너 겸 화가였던 봉상균 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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