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화장실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한 달여 만에 전두환 전 대통령도 사망했다. 전두환 나이는 올해 91세로 혈액암 일종인 다발성 골수증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故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 출석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매우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당시 전두환은 불과 한 달 전보다 살이 급격하게 빠진 모습이었고 칙칙하고 푸석한 피부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지병을 앓아온 전두환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40분깨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 고향은 경상남도 합천이다. 1951년 대구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1955년 육관 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발탁됐고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 19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1969년 육군본부 수석부관을 지냈다. 1970년 백마부대 제29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했고 1971년 제1공수특전단 단장을 지냈다. 1976년 대통령 경호실 차장보, 1978년 제1사단장을 지낸 후 1979년 초 국군 보안사령관이 됐다.
그리고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12월 12일 계업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 후 신군부가 12·12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와 함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강제로 진압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해 6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이 된 전두환은 8월 5일 대장으로 진급하고, 22일 예편하였으며,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리고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어 2월 개정된 새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1987년 6월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견디다 못해 결국 수용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전두환은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비리 문제로 책임 추궁을 당했고 1988년 11월부터 1990년 말까지 백담사에서 은둔 생활을 해왔다.
1996년에는 12·12사태 및 5·18 민주화운동, 비자금 사건과 관련되어 사법 처리되었고 노태우 사망 한 달여 만에 전두환도 사망했다. 현재 전두환 유언은 확인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을 벌인 데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고 조비오 신부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